웨이모 효과: 인공지능이 어떻게 연구 분야의 협업을 조용히 줄이고 있는가
1. 이게 뭔가요?
이 글은 글로벌 학술 기업 홀츠브링크 그룹의 최고과학책임자 대니얼 후크가 자율주행 택시 웨이모를 타본 경험을 바탕으로 2026년 9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글쓴이는 사람 사이의 어색함이나 수고로움을 없애 주는 기술을 순전한 이득으로만 여기는 심리를 '웨이모 효과'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대규모 언어 모델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학계에 급속히 퍼지면서 연구자들이 동료와의 복잡한 소통을 피하고 인공지능에 기대어 혼자 작업하는 '탈협업'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짚어냅니다.
2. 왜 화제인가요?
학술 연구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혁신적인 성과는 배경이 서로 다른 동료들이 부딪히며 논쟁하는 비효율적인 마찰 속에서 탄생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계 보상 제도는 오직 연구 결과물의 수량과 속도만을 우대하고 있어, 언제든 즉각 응답하고 저자 자리도 요구하지 않는 인공지능을 택하는 것이 연구자 개인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마찰 없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집단적인 사고의 다양성이 메마르고 연구의 지적 토대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고 있기에, 이는 학계 리더와 연구비 지원 기관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3. 핵심 내용
글쓴이는 맥밀란 러닝의 수전 윈슬로 대표를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운전석이 텅 빈 웨이모 자율주행 택시를 탔습니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낯선 운전기사와 어색한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고 라디오 채널을 두고 눈치를 볼 일도 없는 조용한 휴식 공간을 누리며 큰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화상 회의로는 하기 힘든 깊은 협업을 하려고 대륙과 바다를 건너 직접 만나러 온 두 사람이, 정작 타인과 말을 섞지 않아도 되는 기술에 감탄하고 있었다는 모순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웨이모 효과'라는 개념이 출발합니다. 팀 우가 말한 '편리의 독재'처럼 사람들은 마찰 없는 선택지가 생기면 그 편리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과거의 마찰이 주던 이점을 조용히 포기합니다. 기술철학자 알버트 보그만의 '기기 패러다임'처럼, 기계는 편리한 최종 산물만 건네주고 그 산물을 얻기 위해 인간이 치러야 했던 수고로운 실천 과정은 뒤로 감춰버립니다. 택시 기사는 일상에서 우연히 내 생각의 울타리 밖 시선을 접할 수 있는 마지막 낯선 사람이었지만, 편리함에 길들여지면서 그 숨은 가치는 사라집니다.
글쓴이는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글을 써내는 인공지능인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지적 영역에서 바로 이 웨이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 인간 동료는 강의나 연구비 마감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고, 연구 주제가 틀렸다거나 기본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불편한 비판을 던집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일요일 새벽 2시에도 즉각 이용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입력한 지시어의 틀 안에서만 고분고분 반론을 펼칠 뿐 근본적인 문제를 먼저 꺼내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료와 일할 때 겪는 이러한 불편함은 결함이 아니라 협업의 본질입니다. 연구는 단순히 논문을 찍어내는 공정이 아니라 토론과 비판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적 공동체이며, 동료에게 건네던 대화를 챗봇으로 돌릴 때마다 학문 공동체를 엮어 주던 사회적 연결망의 실오라기가 하나씩 풀려나가 결국 집단적인 탈협업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은 학계의 왜곡된 보상 체계에 있습니다. 연구비가 줄어들 때 출장비, 학술 워크숍, 안식년처럼 우연한 만남을 돕는 물리적 기반 지원이 가장 먼저 삭감됩니다. 또한 연구 평가 시스템이 여전히 얼마나 많은 논문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쏟아내느냐에 점수를 주는 속도 숭배 풍토를 유지하고 있어, 문헌 조사를 며칠 만에 끝내주는 인공지능의 속도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인공지능은 연구자의 생존 화폐인 논문 저자 자리를 요구하지 않고 지분 갈등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팀 과학 연구에 따르면 소규모 팀이나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의 의외의 결합이 가장 파괴적인 혁신을 만들어내며, 초기 인공지능 연구 결과들은 개인의 생산성은 오르더라도 아이디어 다양성은 좁아져 모두가 비슷비슷한 경로로 수렴하는 위험을 보여줍니다. 즉 우리는 우연한 발견을 단순 생산량과 맞바꾸는 거대한 통제 불능의 실험을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더 깊은 대가는 글쓰기와 사고의 단절에 있습니다. 글쓰기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깊이 생각하는 데 본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며, 두 행위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인지심리학자 로버트 비요크의 '바람직한 어려움'처럼, 기억을 힘겹게 끄집어내고 자기 언어로 문장을 정리하는 수고는 깊은 이해를 만드는 본질적인 원리입니다. 생각을 가다듬는 글쓰기 과정을 인공지능에 맡겨버리면 사고 과정 자체가 통째로 건너뛰어집니다. 이는 미세한 에너지 균형이 유지되다가 한순간 대칭이 깨지며 무너지는 물리학의 PT-대칭 양자 시스템처럼, 겉으로는 논문이 쏟아져 건강해 보이지만 내부의 지적 토대는 이미 위험 수치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금지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2026년 3월 네이처 기고문에서 왕다순 교수가 지적했듯, 스스로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생각의 비행기와 같아서 실패 비용과 대규모 데이터 분석 비용을 대폭 낮춰 소규모 연구실도 거대한 도전에 뛰어들게 돕습니다. 분석 과정을 낱낱이 기록해 다른 연구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검증할 수 있는 재현성도 높여줍니다. 그러나 왕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연구자가 기장으로서 핵심 질문과 결론을 완전히 통제하고 인공지능은 승무원처럼 부리는 '기장이 통제하는 과학'을 강조합니다. 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갈수록 사람이 비상시에 대비한 고유 기술을 연습하지 못해 숙련도가 퇴화한다는 1983년 리샌 베인브리지의 '자동화의 역설'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대화는 비싼 비용을 치르게 만들고 기계와의 대화는 공짜로 만들어 탈협업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부추긴 현재의 보상 제도입니다.
4.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나요?
이 글은 대학과 연구 기금 지원 단체 같은 정책 결정자들에게 인간 사이의 협업을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라 필수적인 핵심 인프라로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연구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계획에 없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토론 워크숍과 현장 교류 같은 '마찰'에 실제 예산을 과감히 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논문을 얼마나 빨리 많이 찍어내는가만 보지 말고 '누구와 함께 깊이 고민했는가'를 실질적인 연구 기여도로 평가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매끄러운 보고서를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시대에는 결과물 자체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는 과정이 훨씬 귀한 가치이며, 연구자들이 편안한 승객 역할에 머물지 않고 조종석에서 주도권을 잡도록 평가 기준을 바로잡아야 학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