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뉴기니에 관해 제가 멈출 수 없는 생각들과 모든 분이 꼭 아셔야 할 이야기들

이 기사는 193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탐험가 믹 리히가 파푸아뉴기니 고지대에서 외부 세계의 존재를 전혀 모르던 100만 명의 주민을 우연히 발견한 역사적 사건과, 그들이 수만 년 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살아온 배경을 다룹니다.

2세기 중반까지 인류 역사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살아온 대규모 사회가 존재했으며, 그 첫 만남의 과정이 수많은 사진과 영상으로 고스란히 기록된 전례 없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파푸아뉴기니 고지대는 험준한 산악과 말라리아 정글로 둘러싸여 외부 접근이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주민들은 약 1만 년 전 독자적으로 농경을 시작해 타로토란과 바나나 등을 재배했으나, 작물이 몇 주 만에 쉽게 썩고 밭을 갈거나 짐을 실어 나를 가축이나 문자가 없어 사회가 더 큰 규모로 통합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수백 명 단위의 작은 부족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으며, 외부 유입 식물이나 조개 같은 물품은 인근 부족 간의 혼인이나 선물 교환을 통해 지식 전달 없이 천천히 전파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300~400년 전에 고원 지대로 들어와 인구 폭발을 일으켰지만, 바다나 외부 문명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언어 장벽과 부족 간의 적대감 때문에 전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1930년 호주인들이 고원 지대에 도달했을 때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유령으로 생각했고, 호주인들은 조개껍데기를 대량으로 들여와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파푸아뉴기니는 험준한 지형과 행정력 부족으로 도로가 잘 연결되지 않고,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는 부족 간 갈등이 이어지는 등 과거의 부족 중심 사회의 모습을 크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험한 지형과 행정력 부족으로 도로가 잘 연결되지 않아 부족 중심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파푸아뉴기니의 현실을 통해, 자연환경이 한 사회의 발전과 통합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